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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달인 학습하는 AI
작성일 2025.10.02

달인 학습하는 AI


매경 춘추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밥알이 몇 개고?" 한 창업회장이 초밥을 먹다 밥알 개수를 묻는다. 머뭇거리는 셰프에게 그는 "낮에는 320개, 술과 함께라면 배부르지 않게 280개가 적당하다"고 답한다. 한 인기 드라마에서 나온 장면이다. 실제로 상당수 일식의 달인들은 습도와 환경에 따라 일정한 밥알 개수를 지켜 초밥을 내놓는다고 한다. K제조 현장에도 탄성을 자아내는 달인이 많다. 맨손으로 고강도 철사를 돌려 침대 속 압축 스프링을 만들어내는 달인은 0.01㎜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끓는 쇳물의 색만 보고 물을 부어 가며 온도를 맞추는 철강의 달인, 대형 설비나 자동차 소리만 듣고도 어디에 고장이 났는지 짚어내는 정비의 달인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한국 제조업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들의 감각은 책이나 매뉴얼에는 없는 것이다. 오직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체득된 암묵지(tacit knowledge)다. 그렇기 때문에 전수하기 어렵고, 설령 전수한다 해도 습득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나 후대를 키우는 데 실패하면 암묵지는 그대로 사라진다. 달인 자신에게도 기술이 묻히는 아쉬움이 크겠지만, 저출생과 고령화로 숙련 기술자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달인의 은퇴는 곧 산업 기술의 후퇴로 이어진다.

그래서 인공지능(AI)이다. AI는 달인의 오감을 데이터로 기록해 형식지로 바꾼다. 온도와 습도는 센서와 카메라로, 쇳물의 색 변화와 설비의 소리는 디지털 신호로 저장된다. 이렇게 전환된 지식은 후배들에게 전해질 뿐만 아니라 달인 스스로도 자신의 기술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개선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축적된 데이터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부가가치로 이어진다. 바로 '제조 AI'의 힘이다.

제조 강국들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독일의 한 연구소는 배터리 셀 용접선을 지속 촬영해 딥러닝으로 미세 불량을 잡아낸다. 일본의 히타치는 숙련 기술자의 작업 방식을 AI로 기록해 신입 직원 교육에 활용한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압도적 규모의 인프라스트럭처와 보조금을 쏟아부어 제조업의 AI 전환을 밀어붙인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이 베테랑 기술자의 노하우를 데이터화하고 있지만, 다수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는 AI가 여전히 먼 이야기다. 가지 않을 수 없는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지만, 기업 상황을 생각하면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인건비와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AI 전환에 나섰다가 현재의 이익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우선 작게라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가 마중물이 돼야 한다. 기업들에 AI 장비 도입 비용, 솔루션 구매 비용을 지원하고 달인들이 기꺼이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획기적으로 보상해주는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축적된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하게 하고, 기업 간 데이터 거래를 허용하는 등 규제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똑똑한 산업 정책'이 절실한 시기다. 경쟁국들이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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